4월10일(미국시간)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CPI) 발표는 시장에 충격을 추기에 충분했다.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올라 2월(3.2%)보다 상승률이 0.3%포인트 높았다. 시장 예상치(3.4%)도 뛰어넘었다. CPI는 전달과 비교해서도 0.4% 올랐다. 역시 시장 예상치(0.3%)를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하고 계산한 근원CPI는 전년동월대비 3.8%, 전월대비 0.4% 올라 모두 시장 예상치를 0.1%포인트씩 넘었다. 근원CPI는 계절적인 요인이나 공급측면의 요인을 제외하고 경제내의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을 측정하는 지표다. 그만큼 사람들이 소비 지출을 늘려 물가를 끌어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 과열 국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물가 외에도 4월 들어 미국이 발표하는 대부분의 지표는 ‘매파적’이다. 연준이 기준으로 삼는 고용 지표중 하나인 비농업고용자수는 3월에 30만3000명 늘어 시장 예상치 21만2000명을 10만 명가량 웃돌았다. 비농업고용자수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3월 실업률도 3.8%를 기록하며 전달은 물론 시장 예상치(3.9%)보다 낮아졌다. 고용이 늘어나고 물가가 오르면 미국 연준 입장에서는 금리인하를 언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외적인 여건도 매파적이다. 3월 70달러 대였던 국제유가(WTI기준)는 4월 들어 80달러 후반까지 올랐다.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간의 전쟁 가능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킨다. 한 마디로 지금 미국에서는 물가는 오르고 고용도 늘어나고 있으면서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층 더 가중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면 연준이 금리를 내리는 것은 명분도 없고 실리는 더더욱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2024년 들어 경제지표가 계속 매파적으로 발표되면서 금리인하 회수에 대한 예상은 6회- >3회- >2회로 갈수록 줄었다. 금리를 인하하는 시점도 3월- >6월- >7월- >9월로 늦어졌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했던 파월 의장의 입장도 궁색해졌다. 연준의 소통방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의 금리 인하 발언이 성급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연준과 파월 의장의 행태와 관련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물가가 급등한 것으로 발표된 이후 “올해가 가기 전에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예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즈가 10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인플레이션이 극적으로 감소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연준의 금리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 연준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인의 금리에 대한 언급은 시장에서 잘못된 기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이 맞다.
바이든 대통령이 금리 인하에 대해 관심이 무척 많고 파월 의장이 이를 알고 있다면 그동안의 스토리가 어느 정도 풀린다. 금리를 내려 효과가 나타나기 까지는 3분기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파월 의장 입장에서는 금리를 실제 내리거나 금리 인하와 관련한 언급을 대선보다 9개월 이상 전에 해야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정치적인 일정을 감안하면 파월 의장이 지난해 말 금리인하를 언급한 것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후 경제지표가 생각보다 너무 ‘매파적’으로 나오자 실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다.
파월의장은 4월16일에는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히면서 비둘기에서 매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둘기와 매를 오락가락하는 파월의 발언은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월 의장은 그럼 언제 금리를 내릴까.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반기에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 6월이 마지노선이다. 그 이후 금리를 내린다면 실제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치금융’을 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 뻔하다. 6월까지 물가가 계속 오르고 고용이 증가한다면 선거전에 금리를 내리는 기회는 사라진다. 그럼 금리 인하 시점은 미국 대선 이후로 미뤄질 것이다. 그때는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금리 정책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상반기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금리 인하 시기는 11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파월 의장이 경제보다는 정치를 고려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고용 전망도 순조롭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17만 3000명으로 지난 2021년 2월 이후 증가폭이 가장 낮았다. 여기에 환율은 연일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1360원 선을 넘었다. 고용과 경기를 살펴보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환율과 물가를 감안하면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딜레마 상황이다.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정치적으로도 한은에는 비우호적인 환경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은행의 선제적인 통화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을 바라보는 ‘천수답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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